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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대구문화] 피플_서예가 율산 리홍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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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서화 연구자 이인숙 박사는 서예가 율산 리홍재(62)를 “타묵 퍼포먼스를 통해 서예의 새 영역을 개척한 작가”라 말한다. ‘타묵’은 ‘붓을 쳐서 먹이 난다.’는 의미로 ‘타필비묵(打筆飛墨)’을 줄여 쓴 말이다. 이 박사처럼 많은 사람들이 율산 리홍재의 타묵 퍼포먼스를 기억한다. 큰 붓에 먹물을 듬뿍 적셔서 긴 종이 위를 걸어가며 써 내려가는 모습은, 붓과 사람이 하나가 되어 나는 형세다. 그리는 것도 아니고, 쓰는 것도 아니며, 몸짓 하나하나에 기를 불어넣고 붓질 하나하나에 영혼을 쳐 깨우는 활기서예다. 율산이 타묵 퍼포먼스를 정식으로 대구에서 선보인 것이 1999년 10월이니, 벌써 20년이다. 국내뿐만 아니라 중국 항주, 서안, 상해를 비롯해 일본, 스위스 등 해외에도 그의 타묵 퍼포먼스 작품들이 소장돼 있다. 친다는 것은 일회성을 전제한 말이다. 다시 고쳐 쓰거나 동작을 재현할 수도 없다. 붓을 쳐서 완성한 글씨는 그 자체로도 조형성을 가져야 한다. 어지간한 내공이 없고서는 해내기 힘든 작업이다.

“서성(書聲)이라고 저는 표현합니다. 큰 붓을 종이에 탁 내려치면서 획을 긋는데 쓰윽하는 소리에 온몸에 전율이 오더군요. 그 맛에 타묵 퍼포먼스를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내용을 전달해야 하고, 글이 가지고 있는 리듬이 있어야 하고, 끝나고 난 다음 꼴이 좋아야 합니다. 서예에도 음악처럼 빠르고 느림이 있어요. 진정한 작가는 자기만의 리듬을 만들어야 합니다.” 율산은 ‘글씨의 리듬’을 강조한다. 그야말로 ‘읽는 서예, 보는 서예, 살아 움직이는 서예’를 추구한다.

영혼을 깨우치다

그가 서예 인생 60년을 기념하는 대규모 개인전을 봉산문화회관에서 연다. 2008년 서울 인사동 서울미술관에서 연 개인전 이후 가장 큰 규모의 전시회다. 1957년생인데 ‘서예 인생 60년’이라니 무슨 연유로 그렇게 계산했는지 그에게 물었다. “누가 몇 년을 하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얼마만큼 했냐가 중요하지 않나요. 지금까지 하루 30시간 글을 썼습니다. 그래서 저는 항상 제 서예 이력을 나이와 같이 계산합니다.” ‘하루 30시간’이라는 표현은 그의 작품을 보면 이해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타묵 퍼포먼스 현장에서의 에너지 넘치는 모습으로 그를 기억하고, ‘흥이 넘친다’는 말로 그를 표현하곤 한다. 그와 술자리라도 같이 한 사람들은 멋들어지게 뽑아내는 트로트 선율을 먼저 떠올리기도 한다. 그렇지만 그는 혼자 있을 때 항상 책을 읽는다. 매일 사전을 찾으며 문장을, 글씨를 구상한다. 떠오르는 생각을 메모한 수첩만 해도 수십 권이 넘는다. 먹과 종이는 항상 작업실에 펼쳐져 있다.

“‘한 일(一)자가 가진 뜻만 해도 사전 몇 장이 빼곡합니다. 몇 번을 반복해서 읽어도 새로운 뜻이 보이니 공부를 안 할 수가 없어요. 모든 건 마음이 준비됐을 때 합니다. 좋은 사람을 만나 술 한 잔 먹고 여흥이 남으면 붓으로 다시 살려내기도 하죠.”취필(醉筆)로 완성한 작품도 많다. 그는 취필 작품도 맑은 정신으로 다시 보면 멋진 작품이 많다고 했다. 완성한 작품도 몇 번이고 다시 보면서 ‘왜 내가 그랬을까. 저게 낫구나. 속도를 바꿔야겠구나.’를 깨우친다고 했다.

그는 이번 개인전에서 ‘만자행(萬字行)’ 시리즈를 대거 선보인다. 여기서 ‘만(萬)’은 ‘많다’는 뜻이다. 타묵 퍼포먼스에서 큰 글씨를 선보였다면, 만자행 시리즈에서는 붓으로 그릴 수 있는 가장 작은 글씨로 화폭을 가득 메운다. “하나하나 세어 보진 않았어요.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글씨를 한 자 한 자 쓰면서 내 마음을 닦고 많은 사람들의 복을 기원합니다.” 만자를 써내려간 글자들은 불(佛), 기(氣) 등 그가 좋아하는 글자들이다. 어떤 것은 얼핏 보면 그림 같기도 하지만 자세히 보면 문자를 변형시킨 모양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만자행’ 작품을 처음 한 것은 30여 년 전 부친의 환갑을 기념해 ‘천수천복’, 수(壽)자를 천 자, 복(福)자를 천 자 써서 병풍을 만들어 드렸을 때였다. 그 당시 부친의 건강과 복을 기원하면서 한 자씩 써내려갔듯, 지금은 주변 사람들, 세상 모든 사람들의 평안을 기원하며 글씨를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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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예는 가사가 있는 음악

“서예는 가사가 있는 음악이죠. 태풍, 서늘한 바람, 시원한 바람. 훈훈한 바람, 이 미세한 차이를 그림으로는 표현하지 못해살아 398도 서예로는 표현할 수 있어요. 자아작고(自我作古), 나로부터 옛것이 지어진다는 말이 있어요. 제가 노력한 만큼 이 세상이 알아줄 것이라는, 그것이 훗날 세상을 바꿀 것이라는 믿음이 있습니다.”

인터뷰 도중 그가 전시에 출품할 ‘만자행’ 작품들을 한 장씩 넘겨 보여줄 때, 곁에서 함께 지켜본 그의 지인은 ‘미치지 않고선 할 수 없다.’는 말까지 했다. “잘 쓰려면 하나에 미치라고 하지 않습니까. 사랑을 잘하려면 한 사람한테 제대로 미쳐야 하고 작품도 그것과 교감해서 오래도록 가야합니다. ‘희로애락 애오욕’이 다 녹아있는 가운데 그 속에서 환희의 세계를 만나는 거죠.” 큰 북은 큰 소리를, 작은 북은 작은 북대로의 울림을 전한다는 율산 리홍재. 큰 한지에서부터 타일, 황토 칠한 나무, 벽지, 펼친 담뱃갑, 그리고 편백나무 알갱이, 포도 씨, 앵두 씨 등 아주 작은 재료에도 글씨를 써서 실험한다. 율산과 대화를 하다 보니 한양대 정민 교수가 조선시대 실학자들을 일컬어 ‘미쳐야 미친다(불광불급不狂不及)’라고 한 표현이 이 사람에게도 어울리겠구나 싶었다.

이번 개인전에서 그는 만자행 작품들과 함께 그동안의 타묵 퍼포먼스 결과물들도 설치해서 선보일 계획이다. 봉산문화회관 전시실이 문을 닫는 저녁 시간에는 봉산문화거리 내에 위치한 그의 작업실에서 전시를 이어 진행한다. 전시는 이달 8일부터 13일까지 펼쳐진다.

글·사진|임언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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